역사

창립

호남은 중국에서 비교적 일찍 박물관을 건립한 지역 중의 하나이다.

1897년: 침주(郴州)시학회가 침주학회 박물관을 건설한 후 무술변법(戊戌變法)의 실패로 인해 폐지되었다.

1904년: 호남 순무인 조이손(趙爾巽)의 창도로 양환규(梁煥奎)와 용불서(龍绂瑞) 등 유명 인사들의 지원을 통해 성 행정부에서 다시 박물관을 건립하였고 도서관과 교육관을 합치어 ‘호남도서관 겸 교육박물관’이라고 불렀으며 주로 인체와 동물의 모형을 진열하였다. 개방된 1년 후 교육박물관에 있는 일부 진열이 취소되었다.

1924년: 6월24일 호남성 교육회박물관은 정식으로 개관.

1927년: 정식으로 “호남성 박물관으로” 명명.

1930년: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후 다시 회복하지 못하였다. 

새로운 시작

1951년: 3월 호남성 박물관은 장사 유방령(留芳嶺)의 백금원(百琴園)에서 시작할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1956년: 호남성 박물관은 장사 서북에 있는 아름다운 열사공원에 건립되어 개관되었다.

개관 초기 호남성 박물관은 “지역 대표적인 박물관”을 건립하는 목적으로 호남의 역사, 문화, 민속, 예술과 자연자원 등을 반영할 수 있는 문화재와 표본의 수집과 전시 업무를 전개하면서 “호남 수공예품 진열”, “호남 광산자원 진열”, “호남 농업자원 진열”, “호남 초(楚)문화재 진열”, “중국 역대 화폐 진열”과 “중국 역대 도자기 진열” 등 6개 주제로 된 진열을 진행하였다. 이는 사람들이 체계적인 지식을 알 수 있는 한편 소장품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1959년부터 1966년까지 “호남 인민혁명역사 진열”이 개방되었다.

성장

1972년: 고고학자들은 장사 동부 교외의 마왕퇴한묘에서 서한(西漢) 고분을 발견하였다.1972년부터 1974년까지 발굴된 마왕퇴한묘의 3개 고분은 20세기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아주 중대한 발견 중의 하나로 인정되고 있으며 호남성 박물관의 발전에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 수천여건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문화재와 완전하게 보존된 한대(漢代) 여 시체의 발견과 출토로 호남성 박물관은 세계의 주목을 끌었고 정부의 중시와 사회 지지를 받게 되었다. 이로서 호남성 박물관의 소장품과 진열 레벨도 크게 제고되었다.

1973년: 국무원의 지지로 박물관은 새로 3510m²의 창고(후에 보호와 전시에 함께 사용되는 곳으로 됨)를 만들어 이는 마왕퇴한묘의 문화재의 보호와 전시에 한 30년 동안 중요한 역할을 발휘해 왔다.

전환

호남성 고고학 발견이 날로 늘어남에 따라 관내의 소장품 중 출토된 문화재들은 점점 많아지게 되었다. 특히 마왕퇴한묘가 발견된 후 역사 고고학 박물관이라는 호남성 박물관의 특징은 날로 뚜렷하게 보여지고 있다.

1971년: 호남성 박물관은 박물관에 소장된 광물 표본을 호남성 지질국에 넘겨주었다. 

1979년: 호남성 박물관은 박물관에 소장된 식물표본을 장사시 제일중학교에 빌려주었다. 이로서 호남성 박물관은 건립 초기의 자연과 역사 소장품을 함께 전시하는 것으로부터 점차 역사적인 소장품 전시와 소장을 위주로 하는 전환을 실현하였다.

개척과 혁신

1999년: 국가와 성 재정국은 공동으로 1.2억 위안을 투자하여 건설하는 전시빌딩이 준공되었다. 전시빌딩의 건설은 호남성 박물관 발전의 새로운 시작이고 각 분야의 업무를 전면적으로 추진하였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호남성 박물관은 “역사예술박물관”으로 확정되었다. 한편 새로운 전시빌딩의 개방을 계기로 대담한 혁신과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마왕퇴한묘 진열”을 선도로 “호남 상주(商周) 청동기 진열”, “호남 도자기 진열”, “명청(明清) 회화 진열”(“명청(明清) 서화 진열”과 정기적으로 전환), “호남 10대 고고학 발견”을 포함한 기본 전시와 5개 특정 전시를 만들었다. 그 중에 “마왕퇴한묘 진열”은 2003년-2004년 전국10대 명품 진열로 선정되었다. 이밖에 수백개의 임시 전시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대중들에게 높은 수준의 전시 기관이라는 이미지를 수립하게 되었다. 또한 전면적인 관리와 인성화의 서비스를 통해 선진적이고 개방적인 관리모델을 건립하였고 많은 성공적인 경험을 거두었고 전국 문화재 전시 업계에서 큰 영향을 일으켰다. 이와 동시 새로운 사회환경 속에서 호남성 박물관은 적극적으로 제도를 개혁하고 혁신하여 2002년, 2005년, 2009년에 내부적인 구조조정과 팀 워크의 제고를 목적으로하는 개혁과 혁신을 3번 제출하였다. 이는 박물관 사업에 크게 도움을 준 것으로 사회 효익과 경제적 효익은 크게 늘어나고 있었다.

2008년: 공익성의 문화기관으로서 박물관은 2008년3월20일에 정식으로 무료 개방을 실시하였다. 대중들에게 문화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호남성 박물관은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면서 맡은 바의 책임을 잊지 않고 적극적으로 관람자들에게 따뜻한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이밖에 무료 개방을 실행했을 때 새로운 탐색과 실천을 진행하여 사회주의문화의 발전과 번영에도 이바지하게 되었다.

2008년: 호남성 박물관은 첫 번째의 국가 1급 박물관 중의 하나로 되었다.

2009년: 호남성 박물관은 재정부와 국가문화재국으로부터 중앙과 지방이 공동으로 건설한 8개 국가급 중점박물관(원) 중의 하나로 선정되었다.

성장과 도약

2010년: 사람들은 문화 수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전문가들은 연구와 토론을 많이 해보왔는데 호남성 위원회와 성 정부는 호남성 박물관의 원래 장소에서 확대 건설을 실시할 것을 결정하였다.

2012년: 공사가 잘 진행할 수 있고 건설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 및 문화재의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2012년6월18일부터 호남성 박물관은 대외 개방 서비스를 중지할 것을 결정하였다.

2017년: 2017년10월 호남성 박물관 신관은 정식으로 대외 개방되었다.

호남성 박물관 신관은 “전성동정(鼎盛洞庭)”을 혁신 이념으로 기존 전시빌딩을 기초로 전체적으로 대칭적이고 간결하고 세련되며 신중하고 일치되는 구조 배치를 강조하면서 호남의 인문을 중국의 전통문화 및 현대문화와 결합하여 새로운 것과 옛날 것이 융합된 전체적인 느낌이 뚜렷하게 형성하되었다. 2차의 확대 건설을 거쳐 호남성 박물관의 관람자 접대와 서비스 기능은 더욱 제고된 것으로 매년 접대하는 관람자 수량만 하여도 한 300만명에 달했다. 이밖에 소장품의 보관과 보호, 진열과 전시, 관람자 교육 서비스 시설 조건은 근본적으로 개선되었다. 이와 동시에 관리 시스템의 개혁을 실시하여 직원 자질과 기계 설비의 전면적인 업그레이드를 실현하였다. 이는 호남성 박물관 사업의 새로운 발전과 도약에 튼튼한 기반을 마련하였다.